문과14 손톱깎이 왕구슬 - 손톱깎이 누군가 내게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외면하며 손톱만큼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2024. 1. 19. 사모 사모 -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2021. 12. 12. 눈사람 자살사건 눈사람 자살사건 - 최승호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 위에 누워있었다 그는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 속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 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 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2021. 11. 22. 판의 미로를 보긴 봤는데... 음... 보기 전에 상상하던 내용과 상당히 다르다고 해야되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어린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간 이후의 펼쳐지는 판타지스러운 내용이 주가 되는 영화라 생각했지만 주인공(어린소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판타지스러운 부분'과 주인공의 양아버지(대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파시즘 정권의 군대와 레지스탕스의 게릴라전이 교차편집되는 영화였다. 어린이의 시점과 어른의 시점을 대비시켜 전쟁의 아픔을 강조하는 영화는 많이 있지만, 어린이의 시점이 참... 보통 영화가 어린이의 순진함 천진난만함을 이용해 어린이 화자로 냉소적인 현실을 가감없이 내뱉는 게 보통이라면 판의 미로는 이 주인공인 어린이의 시점이... 호러스럽다. 보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이 '얘는 무섭지도 않나?' 이런 생각? .. 2021. 6. 6. 이전 1 2 3 4 다음